13년 경력인데 여전히 '품질 검사 담당'으로만 불리나
- 10 Dec, 2025
13년차 팀장
오늘 경영진 보고가 있었다. 개발 팀장, 기획 팀장, 나. 한 시간 발표했다.
개발 팀장은 “신기술 도입”으로 칭찬받았다. 기획 팀장은 “비즈니스 임팩트”로 인정받았다. 내 차례가 왔다.
“QA는 배포 일정 맞춰주기만 하면 돼요.”
13년 했다. 여전히 이렇다.

같은 팀장인데
우리는 같은 급여 테이블이다. 팀장 직급, 연봉 8500만원. 관리자 수당도 같다.
그런데 회의에서 다르다.
개발 팀장: “기술 부채 해소하려면 3개월 필요합니다.” 경영진: “알겠습니다. 계획 세워주세요.”
기획 팀장: “사용자 리서치 기간 2주 더 주세요.” 경영진: “필요하면 하세요.”
내 차례.
나: “리그레션 테스트 자동화하려면 인력 2명 더 필요합니다.” 경영진: “그거 꼭 해야 해요? 수동으로 하면 안 돼요?”
나: “품질 전략 재수립하려면 시간이…” 경영진: “일정은 지켜야죠. 품질은 당연한 거고.”
같은 팀장이다. 왜 나만 이럴까.
전략가가 아니라 검사자
리스크 기반 테스트 전략. 13년 동안 갈고 닦았다.
어느 기능을 집중 테스트할지. 어느 영역을 자동화할지. 리소스를 어떻게 배분할지.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한다. 과거 장애 이력, 변경 빈도, 비즈니스 임팩트. 엑셀에 정리한 게 아니다. TestRail, Jira 연동해서 실시간 대시보드다.
지난주 전략 회의. 신규 기능 20개, 일정 2주. 불가능하다.
“우선순위 기반으로 테스트 범위 조정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개발 팀장이 웃었다. “QA는 다 테스트하는 거 아니에요?”
전략이 아니다. 그냥 검사다. 내가 하는 건 체크리스트 체크. 그들 눈엔 그렇다.

장애는 QA 책임
지난달 장애 났다. 금요일 밤 10시. 결제 모듈 오류.
토요일 새벽 3시까지 대응했다. 원인 분석, 재발 방지책, 포스트모템. 월요일 보고서 20페이지 작성했다.
회의에서 질문 받았다. “왜 QA에서 못 잡았어요?”
변경 사항 300개. 테스트 일정 3일. 자동화 커버리지 40%. 인력 8명.
설명했다. 리소스 한계, 우선순위 결정 과정, 리스크 평가 근거.
“그래도 QA 아니에요?”
개발 팀장은 안 물어본다. “왜 버그를 만들었냐”고.
기획 팀장도 안 물어본다. “왜 요구사항이 애매했냐”고.
나만 묻는다. “왜 못 잡았냐”고.
품질은 협업의 결과다.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무도 안 듣는다.
투자는 안 되는 영역
올해 예산 회의. 각 팀 투자 계획 발표했다.
개발팀: “클라우드 인프라 확장, 3억” 승인.
기획팀: “사용자 분석 툴 도입, 5천만원” 승인.
QA팀: “테스트 자동화 인프라, 1억” 보류.
“수동으로 하면 안 돼요?” 또 그 질문.
자동화하면 회귀 테스트 시간이 2주에서 2시간으로 준다. 설명했다. 리소스 절감 효과, ROI 계산, 벤치마크 데이터.
“일단 올해는 보류요. 꼭 필요하면 내년에.”
내년에도 똑같다. 매년 보류다.
개발은 투자. 기획은 투자. QA는 비용.
그들 눈엔 그렇다.

팀원들한테 미안하다
우리 팀 8명. 다들 열심히 한다.
막내는 자동화 공부한다. 야근하면서 셀레니움 돌린다. “팀장님, 이거 정식으로 도입하면 안 될까요?”
중견은 성능 테스트 전문가다. JMeter로 병목 잡아낸다. “부하 테스트 환경 제대로 갖추고 싶어요.”
다 들어주고 싶다. 예산이 없다. 아니, 예산은 있다. 우선순위가 낮다.
지난주 1on1. 5년차 팀원이 물었다. “팀장님, QA도 커리어 전망 있나요?”
할 말이 없었다.
“있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하지만 확신도 없다.
13년 했다. 팀장까지 왔다. 그래도 ‘검사 담당’이다.
팀원들은 뭘 보고 희망을 가질까.
다른 회사도 똑같다
QA 커뮤니티 모임.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타사 QA 리드들.
다들 똑같다. “우리도 그래요.” “저희도 예산 안 나와요.” “장애는 무조건 QA 책임이래요.”
한 명이 말했다. “외국계는 좀 나아요. QA를 전략 파트너로 봐요.”
부럽다. 이직할까.
아니다. 여기서도 13년 걸렸다. 다시 시작하기엔 나이가.
38세다. QA 시작한 게 25세. 그때는 테스터였다. 지금은 팀장이다.
호칭만 바뀌었다. 역할은 그대로다.
인정받고 싶다
거창한 거 아니다.
“QA 덕분에 품질이 좋아졌어요.” 이 말 듣고 싶다.
“테스트 전략 탄탄하네요.” 이 인정 받고 싶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네요.” 이 평가 받고 싶다.
13년 했다. 장애 막은 건 몇 번인지 모른다. 배포 전에 치명적 버그 잡은 것도 수십 건.
아무도 모른다. 장애가 안 난 건 당연한 거다. 품질이 좋은 건 개발을 잘한 거다.
QA는 보험이다. 있어야 하지만 티 나면 안 되는.
티 나면 “왜 못 잡았냐”는 질문. 안 나면 “필요 없는 거 아니냐”는 의심.
그래도 계속한다
어제 배포 있었다. 신규 기능 15개. 2주 테스트.
팀원들이랑 밤샜다. 리그레션 돌리고, 시나리오 검증하고, 성능 체크했다.
배포 성공. 장애 없었다.
슬랙에 올라왔다. “배포 성공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QA 언급 없다. 괜찮다. 익숙하다.
팀원들한테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우리가 잘해서 문제없었던 거야.”
팀원들이 웃었다. “팀장님 덕분이죠.”
아니다. 다들 잘했다.
퇴근하면서 생각했다. 13년 했다. 앞으로 몇 년 더 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했다. 내일도 할 거다.
품질 검사 담당이어도. 전략가로 인정 안 받아도. 투자 우선순위 낮아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내가 하는 게 낫다. 13년 경력이니까.
13년차 팀장인데, 여전히 ‘검사나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내일도 출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