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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luence에 적힌 지난달 리포트, 누가 봤을까

Confluence에 적힌 지난달 리포트, 누가 봤을까

새벽 1시의 완성 지난달 품질 리포트 작성했다. 새벽 1시까지. Confluence 페이지 30개. 차트 15개. 테이블 20개 넘게. 품질 지표, 버그 트렌드, 리스크 분석, 자동화 커버리지, 팀 리소스 현황까지. 하나하나 숫자 검증하고, 그래프 색깔 맞추고, 인사이트 정리했다. "이번엔 제대로 읽힐 거야." 매달 하는 생각이다. 매달 틀렸다.작년 배포 장애 이후로 시작했다. 경영진이 "품질 가시성이 없다"고 했다. CTO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운운했다. 그래서 만들었다. 월간 품질 리포트. 처음엔 열심히 했다. 당연히. 13년 차 QA 팀장이다. 숫자로 말하는 게 익숙하다. 첫 달 리포트는 40페이지였다. 너무 길다고 했다. 두 번째 달은 25페이지로 줄였다. 핵심만 남겼다. 그래도 안 읽었다. "바쁘셔서 그래. 다음 달엔 읽으실 거야." 지금 10개월째다. 여전히 안 읽는다. 5분의 경영진 보고 월례 경영진 보고 있었다. 오늘 오후 2시. 내 차례는 14시 47분. 발표 순서 7번째. 앞에 개발팀, 인프라팀, 보안팀 다 끝나고. 준비한 건 20분 분량. 핵심 슬라이드 12장. 발표 시작했다. "지난달 품질 지표 보고드리겠습니다." 첫 슬라이드 넘어가는데 누군가 물었다. "장애 몇 건이었죠?" "크리티컬 2건, 메이저 5건입니다." "작년 대비로요?" "30% 감소했습니다." "오케이. 다음."3분 지났다. 12장 중에 2장 넘어갔다. "자동화 커버리지는 어떻게..." 말 끊겼다. CFO가 물었다. "그래서 다음 분기 품질 이슈 리스크는?" "중위험 3개, 고위험 1개입니다. 상세 내용은..." "고위험 뭔데요?" "레거시 결제 모듈 리팩토링 관련입니다. 테스트 환경이..." "개발팀이랑 조율했죠?" "네, 했는데 일정이 촉박해서..." "일정 내 해결 가능한가요?" "리소스 추가 투입되면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다음 안건." 5분 지났다. 발표 끝났다. 12장 중에 4장 봤다. 나머지 8장은 "시간 관계상 패스"였다. 회의실 나왔다. 손 떨렸다. 화장실 갔다. 거울 봤다. 웃었다. 웃긴 거다. Confluence 조회수 0 사무실 돌아와서 Confluence 열었다. 지난달 리포트 페이지. 페이지 하단에 조회수 나온다. 작은 숫자. Views: 12 12명. 우리 팀 8명. 나 1명. 개발팀 리드 2명. 기획팀 1명. 끝. 경영진은 0명.페이지 상단에 @멘션 걸어뒀었다. CTO, CPO, CFO, 각 본부장 5명. 총 8명. 알림 갔을 거다. 슬랙에도 공유했다. "#leadership" 채널에. 반응은 이모지 하나. 👍 누가 눌렀는지 확인했다. 개발 본부장이었다. 착한 사람이다. 읽지도 않고 눌러줬을 거다. 작년 9월 리포트 열어봤다. Views: 8. 10월: 11. 11월: 9. 12월: 15. (연말이라 그래도 많았다.) 올해 1월: 7. 2월: 10. 3월: 12. 평균 10명. 우리 회사 직원 1000명이다. 경영진 15명이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웃긴다. 30시간의 가치 계산해봤다. 한 달 리포트 작성 시간. 데이터 수집: 4시간. Jira, TestRail, Jenkins, Sentry 다 뒤진다. 분석: 6시간. 트렌드 찾고, 이상치 확인하고, 원인 추론한다. 차트 작성: 3시간. 엑셀로 만들고, 스크린샷 떠서 붙인다. 인사이트 정리: 5시간.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다음 달은 어떨지 쓴다. 검토 및 수정: 4시간. 팀원들 피드백 받고, 숫자 재검증한다. 슬라이드 작성: 6시간. 경영진 보고용. 알아듣기 쉽게. 피드백 반영: 2시간. "이 부분 더 상세하게" "여기 간략히" 총 30시간. 한 달 근무시간 160시간의 18.75%. 내 연봉 8500만원의 18.75%는 1593만원. 월 132만원 상당의 일이다. 5분 보고로 끝난다. 분당 26만원. 1초에 4400원. "다음 안건" 한마디에 132만원 날렸다. 누구를 위한 리포트인가 팀원한테 물어봤다. 민지, 5년 차. "민지야, 내가 쓰는 월간 리포트. 도움 돼?" "아, 네. 도움 되죠." "어떤 부분이?" "음... 전체 품질 트렌드 파악할 때요?" "그거 우리 팀 주간 회의에서 다 얘기하잖아." "아... 그렇긴 하네요." "솔직히 말해. 읽어?" 민지가 웃었다. "가끔요. 필요할 때." "언제가 필요할 때야?" "팀장님이 '리포트 봐' 하실 때요." 정직한 대답이다. 개발팀 리드한테도 물었다. 석진, 10년 차. "석진아, 우리 품질 리포트 보고 있어?" "어, 대충 훑어보지." "뭐가 도움 돼?" "버그 트렌드? 우리 팀 품질 어떤지 확인하려고." "그거 주간 QA 미팅에서 다 공유하는데." "아... 맞네. 그럼 뭐 보지..." 석진도 웃었다. "사실 잘 안 봐. 미안." 아니다. 미안할 거 없다. 당연하다. 30시간 들여 만든 리포트가 필요 없는 거다. 품질은 숫자가 아니라서 문득 깨달았다. 품질은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다. 이 회사에서는. 버그 30% 줄였다고? "원래 그래야 정상 아냐?" 테스트 커버리지 80% 달성? "100%는 왜 안 돼?" 장애 제로 달성? "당연한 거 아냐?" 자동화로 리소스 40% 절감? "그럼 팀원 줄여도 되겠네?" 품질은 공기다. 있을 땐 모르고, 없을 때만 난리다. 작년 대형 장애 때 생각난다. 밤 11시에 전화 왔다. CTO였다. "지금 결제 안 돼요. 왜 이래요?" "확인하겠습니다." 새벽 3시까지 원인 찾았다. 개발팀 긴급 배포. 5시에 복구 완료. 다음 날 오전 회의. CTO가 물었다. "왜 사전에 못 잡았어요?" "테스트 환경이 프로덕션이랑 달라서..." "그럼 환경 맞춰야죠." "예산 요청 드렸는데 보류되셨습니다." "..." 침묵. 5초. 그리고. "다음부터 미리 체크해주세요." 그날 Confluence에 포스트모템 10페이지 작성했다. 조회수: 6명. 리포트를 쓰는 이유 그럼에도 쓴다. 매달. 왜? 첫째, 내 책임이다. 팀장이니까. 품질 상태 기록 남겨야 한다. 둘째, 언젠가 필요하다. 장애 나면 "그때 경고했었다" 증거 된다. 셋째, 팀원들 성과다. 숫자로 안 남기면 인정 안 받는다. 넷째, 내가 정리 필요하다. 한 달 돌아보는 시간. 다섯째, 혹시 모른다. 누군가 읽을지. 여섯째, 습관이다. 13년 했다. 이게 프로다. 그래도 허무하다. 30시간이 5분으로 압축되는 순간. "잘 하고 있어요." 누가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경영진이. 한 번이라도. "리포트 잘 봤어요. 수고했어요." 그 한마디면 된다. 다음 달도 쓸 힘 생긴다. 근데 안 온다. 안 올 거다. 알고 있다. QA의 목소리 동료 QA 팀장이랑 술 마셨다. 다른 회사. "너네도 품질 리포트 써?" "어, 매달." "읽어줘?" "ㅋㅋㅋ 아니." "우리도." "QA가 원래 그래." 잔 부딪혔다. 쓴웃음 나왔다. "근데 신기한 거 있어. 장애 나면 우리 목소리 엄청 커져." "ㅇㅇ. 맞아. 그때만." "평소엔 투명인간이다가 장애 터지면 슈퍼맨 돼야 해." "예방은 몰라주고 대응만 평가하지." "백신 맞으면 아프고, 안 맞으면 병 걸리고. QA가 백신이야." "인정." 또 마셨다. 소주 3병째. "그래도 써야지. 안 쓰면 더 투명인간 돼." "맞아. 쓰는 게 최소한의 존재감이야." "슬프네." "그래도 우리 일이니까." 헤어질 때 그가 말했다. "나중에 우리 세대가 임원 되면 달라질까?" "글쎄. 그땐 우리도 바빠서 안 읽을 거야." "ㅋㅋㅋ 현실적이네." "13년 하면 알게 돼." 택시 탔다. 집 가는 길. 창밖 봤다. 서울 야경 예쁘다. 불 켜진 빌딩들. 다들 야근 중이다. 저 안에 몇 명이나 Confluence 보고 있을까. 다음 달 리포트 오늘도 쓴다. 이번 달 리포트. 데이터 모으고 있다. Jira 쿼리 돌렸다. TestRail 리포트 뽑았다. 차트 만들 거다. 트렌드 분석할 거다. 인사이트 정리할 거다. 30시간 들일 거다. 5분 발표될 거다. 10명 읽을 거다. 그래도 쓴다. 누군가는 봐줄 거라고. 언젠가는 읽힐 거라고. 믿고 싶다.새벽 1시, 저장 버튼 눌렀다. 다음 달에 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