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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 06 Dec, 2025
7시 퇴근 후 남편이 '요즘 슬랙 더 많이 본다'고 했을 때
7시 26분 퇴근했다. 정시보다 26분 늦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슬랙 확인했다. 개발팀에서 멘션 3개. 집 앞 편의점에서 우유 사면서도 슬랙 봤다. 현관문 열면서도 슬랙 켜져 있었다. 남편이 부엌에서 파스타 끓이고 있었다. "왔어?" "응. 고마워." 식탁에 앉았다. 슬랭 알림 또 왔다. QA 팀원이 프로덕션 버그 리포트 올렸다. 심각도 체크하면서 답장 썼다. "요즘 슬랙 더 많이 보는 것 같은데." 남편 목소리였다. 고개 들었다. 파스타 면 건지고 있었다. "...응?" "예전엔 집에서는 안 봤잖아." 맞다. 예전엔 안 봤다.팀장 되기 전 QA 5년차까지는 칼퇴했다. 7시 되면 노트북 닫았다. 슬랙 로그아웃. 주말엔 회사 전화 안 받았다. "제 업무는 제 시간 안에 끝냈어요." 그게 자랑이었다. 8년차에 시니어 됐다. 그때부터 달라졌다. 조금씩. 신입 멘토링하면서 저녁에 질문 답변했다. 주말에 테스트 시나리오 검토해줬다. "선배니까"라고 생각했다. 10년차에 팀장 제안 받았다. 고민했다. 3주. 남편이 말했다. "해봐. 후회 안 할 거 같은데." 승진했다. 팀원 8명 맡았다. 연봉 1200만원 올랐다. 그날부터 슬랙이 24시간이 됐다. 책임의 무게 팀장 책상에 앉은 첫날. 선임 팀원이 말했다. "팀장님, 프로덕션 장애 나면 제일 먼저 연락 갑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농담 아니었다. 실제로 그랬다. 새벽 2시 전화 왔다. 결제 장애. 3시까지 개발팀이랑 원인 파악했다. QA에서 놓친 시나리오였다. 경영진 보고서 썼다. 재발 방지책 세웠다. 다음 날 아침 출근. 눈 아래 다크서클. 커피 두 잔. 9시 임원 보고. "품질 관리 체계 점검하겠습니다." 팀원들한테 미안했다. 내가 놓쳤는데. "팀장이 책임지는 거지. 당연한 거야." 그 뒤로 슬랙 알림 끌 수가 없었다.8명의 시간표 팀원 A는 신입. 매일 질문 10개. 저녁 8시에도 물어본다. "이거 어떻게 해요?" 답해줘야 한다. 내일까지 기다리면 일정 밀린다. 팀원 B는 3년차. 테스트 자동화 담당. 주말에 스크립트 짜다가 에러 나면 슬랙 멘션. "급하진 않은데요." 근데 월요일 데모인데. 토요일 오후에 코드 리뷰 해준다. 팀원 C는 육아휴직 복귀. 6시 칼퇴. 당연한 권리. 근데 C 담당 프로젝트 이슈는 7시 이후에도 터진다. 내가 본다. 내가 판단한다. 내가 에스컬레이션한다. 팀원 D는 8년차. 내 다음 서열. "팀장님 쉬세요. 제가 볼게요." 고맙다. 진심으로. 근데 D가 판단 못 하는 이슈도 있다. 결국 내가 본다. 8명. 각자 다른 프로젝트. 다른 일정. 하나라도 놓치면 장애. 장애 나면 내 책임. 슬랙을 어떻게 안 봐. 저녁 8시의 멘션 파스타 먹으면서 슬랙 봤다. 남편이 접시 치우면서 한숨 쉬었다. 들었지만 못 들은 척했다. 딸이 숙제 검사해달래서 방 갔다. 수학 문제집. 틀린 거 체크하면서. 슬랙 알림 또 왔다. "엄마 집중 안 해." "미안, 다시 볼게." 씻으려고 욕실 갔다. 폰 두고 가려다가 들고 들어갔다. 샤워 중에 슬랙 확인은 안 했다. 나올 때 봤다. 긴급 멘션 2개. 남편이 침대에서 책 읽고 있었다. 누워서 슬랙 답장 썼다. "자기야." "응?" "그거 지금 해야 돼?" 해야 한다. 내일 아침 배포인데. 말 안 했다. "거의 다 했어." 10분 더 걸렸다. 불 끄고 누웠다. 남편 등 돌려져 있었다.일과 가정의 균형이라는 말 회사에서 매년 한다. 워라밸 교육.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해." 1시간짜리 온라인 강의. 배속으로 듣는다. 다들 그렇다. 강의 내용 알고 있다. "업무 시간과 개인 시간 구분." "불필요한 야근 지양." "주말엔 업무 연락 자제." 맞는 말이다. 전부. 근데 현실은 다르다. 우리 팀 주요 서비스 MAU 500만. 장애 나면 기사 난다. 주말에도 배포 있다. 고객은 24시간 쓴다. 누군가는 지켜봐야 한다. 그게 팀장이다. 나다. "업무 시간 안에 끝내면 되잖아요." 예전의 나한테 듣고 싶은 말. 지금의 나는 대답 못 한다. 남편의 말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커피 내려주면서 말했다. "어제 그 말, 서운했어?" 아니라고 하려다가 멈췄다. "...조금." "미안. 근데 진짜로." 남편도 개발자다. 안다. "자기 요즘 표정이 안 좋아." "...그래?" "응. 집에 있어도 여기 없는 것 같아." 할 말 없었다. 맞는 말이니까. "나도 야근 많이 하잖아. 근데." 남편이 말 이었다. "집에선 폰 잘 안 봐. 의식적으로." "네 일이 더 중요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근데 자기는 항상 연결돼 있어야 하는 것처럼 보여." 또 맞는 말이다. "팀장이라서 그래." 겨우 나온 대답. "팀원들이 물어보면 답해줘야 하고." "이슈 놓치면 내 책임이고." "그래. 알아." 남편이 고개 끄덕였다. "근데 그게 매일 밤 10시까지여야 해?" "주말에도?" 대답 못 했다.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필요하다고도 확신 못 했다. 필요와 불안 사이 솔직히 모르겠다. 슬랙 확인이 꼭 필요한 건지. 아니면 내가 불안한 건지. 팀원이 7시에 멘션했다. 답장 안 하면 어떻게 될까. 내일 아침에 답해도 되는데. 근데 혹시 급한 거면? 혹시 내일까지 기다리면 문제 생기면? 그래서 답한다. 즉시. 그게 쌓인다. 매일. 어느 순간부터 슬랙이 기본값이 됐다. 출근 전 체크. 점심시간 체크. 저녁 먹으면서 체크. 자기 전 체크. 안 보면 불안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뭔가 터지면?" 그 생각이 자동으로 든다. 팀장 되기 전엔 안 그랬다. 내 일만 잘하면 됐다. 이젠 8명 일 다 신경 써야 한다. 8개 프로젝트 흐름 알아야 한다. 경계가 없어졌다. 업무 시간과 개인 시간의. 그게 팀장의 숙명인가. 아니면 내가 못 그어서인가. 어제 밤 통계 자기 전에 슬랙 히스토리 봤다. 어제 하루 슬랙 사용 시간. 출근 전: 15분. 업무 시간: 4시간 20분. 퇴근 후: 1시간 40분. 총 6시간. 하루의 4분의 1. 받은 멘션: 27개. 보낸 메시지: 84개. 읽은 채널: 12개. 퇴근 후 1시간 40분을 쪼개보면. 저녁 먹으면서: 20분. 딸 숙제 봐주면서: 15분. 씻으면서: 10분. 침대에서: 55분. 55분. 거의 한 시간을 침대에서 슬랙 봤다. 남편 옆에서. 통계 보고 웃었다. 웃긴데 안 웃긴 웃음. 선택이라는 착각 "팀장 안 하면 되잖아요." 후배 QA가 한 말. 맞다. 관리자 싫으면 안 하면 된다. 근데 그게 선택인가. 13년 했다. QA를. 더 올라가거나. 여기 머물거나. 둘 중 하나다. 전문가 트랙도 있다. QA 아키텍트. 테스트 전문가. 근데 우리 회사는 그 자리가 1개다. 이미 차 있다. 다른 회사로? 옮기면 연봉 내려간다. 아마. 팀장 경력 3년인데 다시 시니어로? 아니면 계속 여기서. 팀장으로. 슬랙 보면서.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다 자기 상황에서 하는 말이다. 나한테 진짜 선택지는 별로 없다. 경계 긋기 실험 지난주에 시도해봤다. "저녁 9시 이후엔 슬랙 안 본다." 팀원들한테도 말했다. "급한 건 전화 주세요." 첫날. 9시에 슬랙 껐다. TV 봤다. 남편이랑. 10시쯤 불안해졌다. "혹시 뭐 놓친 거 아냐?" 참았다. 11시에 켰다. 멘션 5개. 다 급한 거 아니었다. "내일 답변 부탁드려요" 수준. 둘째 날. 9시에 껐다. 근데 8시 50분에 미리 확인했다. "9시까지는 봐야지." 9시 5분에 또 켰다. "마지막 체크." 셋째 날. 저녁 7시에 프로덕션 장애. 9시까지 해결 안 됐다. "오늘은 예외." 11시까지 봤다. 넷째 날. 그냥 포기했다. 경계 긋기. 말은 쉽다. [PROMPT_THUMBNAIL: anime style illustration, Korean female QA team lead sitting at desk late evening, smartphone with Slack notifications glowing, laptop open, exhausted but focused expression, warm office lighting transitioning to cool evening tones, Studio Ghibli inspired aesthetic, work-life balance struggle visualized, professional manga style] 8500만원의 값 연봉 8500만원. 세전이다. 실수령 650 정도. 관리자 수당 월 80 포함. 시급 계산해봤다. 심심해서. 월 평균 근무 200시간 기준. 시급 32,500원. 근데 실제론? 퇴근 후 슬랙 1시간 40분. 주말 슬랙 체크 1시간. 새벽 장애 대응 월 2회. 실근무 시간 월 240시간쯤. 시급 27,000원. QA 5년차 때 연봉 4800. 근무 시간 월 180시간. 시급 26,600원. 거의 같다. 8년 더 일했는데. 물론 돈만이 아니다. 팀 꾸리는 경험. 의사결정권. 커리어. 근데 남편 말 듣고 생각했다. 이게 맞나. 어제와 오늘 어제 남편이랑 얘기 더 했다. "당신 얘기 들으니까." "나도 모르게 연결돼 있었던 것 같아." "꼭 필요한 건 알아." 남편이 말했다. "근데 경계는 필요해." "자기 건강도 생각해야지." 맞다. 요즘 두통 잦다. 허리도 아프다. 수면 시간 6시간 안 된다. "이번 주는 해보자." 약속했다. "10시 이후엔 진짜 긴급 아니면 안 본다." 오늘이 월요일. 지금 저녁 8시. 슬랙 알림 12개 쌓였다. 하나씩 본다. 긴급: 0개. 중요: 3개. 내일 해도 됨: 9개. 중요한 것 3개만 답했다. 나머지는 내일. 남편이 거실에서 드라마 보고 있다. "다 했어?" "응." 폰 엎어놓고 소파에 앉았다. 드라마 줄거리 모르겠다. 그래도 본다. 알림 또 왔다. 안 봤다. 손이 근질근질하다. 참는다. 10시까지는 참아보는 거다.슬랙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근데 시도는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