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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
- 13 Dec, 2025
팀원 평가 시즌, 성과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11월이 오면 11월이다. 평가 시즌이다. 다른 팀 리드들은 성과 자료 정리하느라 바쁘다. 나도 바쁘다. 우리 팀원 8명 성과 어필해야 한다. 개발팀은 쉽다. "신규 기능 20개 개발했습니다." 디자인팀도 괜찮다. "UI 개선으로 전환율 15% 상승했습니다." 그런데 QA는? "버그 500개 찾았습니다"? 그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경영진은 모른다.작년에 배웠다. "저희 팀 열심히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숫자가 없으면 설득이 안 된다. 근데 QA 성과를 숫자로 어떻게 만드냐고. 숫자 만들기는 전쟁이다 월요일 아침 9시. 팀원들 불렀다. "이번 주 안에 각자 성과 정리해. 정량 지표 위주로." 민수가 물었다. "버그 개수 쓰면 되나요?" "안 돼. 버그 많이 찾은 게 우리가 잘한 건지, 개발팀이 못한 건지 애매해." 지현이가 또 물었다. "그럼 뭘 쓰라는 거예요?" "장애 건수. 작년 대비 올해 줄어든 거. 그게 너희가 사전에 찾아낸 거야." 회의실 조용해졌다. 다들 그런 데이터 따로 모아둔 적 없다.수요일. 데이터 수집 시작했다. Jira에서 장애 건수 뽑았다. 작년 43건, 올해 28건. 35% 감소. 괜찮다. 근데 인사팀이 물어본다. "그게 QA 팀 덕분이라는 근거가 뭔가요?" 할 말이 없다. 그냥 "우리가 잘해서요"라고 하면 안 믿는다.결국 추가 자료 만들었다. "크리티컬 버그 사전 발견율 87%" - 배포 전에 우리가 찾은 거. "프로덕션 핫픽스 건수 작년 대비 52% 감소" - 이것도 우리 덕분. "고객 CS 불만 중 품질 관련 이슈 61% 감소" - CS팀한테 데이터 받았다. 이제 좀 보인다. 우리가 뭘 했는지. 성장은 숫자로 말한다 목요일 오후. 팀원별 성과 정리 시작. 수진이가 제일 어렵다. 시니어인데 올해 특별한 프로젝트가 없었다. 그냥 묵묵히 테스트했다. 꼼꼼하게. 정확하게. 근데 이걸 어떻게 어필하냐. 1on1 했다. "수진아, 올해 뭐 한 거 같아?" "그냥... 일했죠." "구체적으로."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저번 달에 결제 로직 버그 찾았어요. 심각한 거." "얼마나 심각한데?" "고객 카드 이중결제될 뻔했어요. 금액 계산해보니까 월 2000만원 손실 날 수도 있었고요." 바로 그거다. "월 2000만원 손실 방지" 이게 성과다. "꼼꼼한 테스트로 심각한 버그 발견" 이런 거 안 쓴다. "연 2억 4천만원 잠재 손실 방지" 이렇게 쓴다.주니어 혜진이는 다른 방식이다. 올해 입사 2년차. 성장이 중요하다. "자동화 테스트 작성 60건" - 구체적 산출물. "회귀 테스트 시간 20시간에서 4시간으로 단축" - 효율성. "신규 테스트 프레임워크 학습 완료, 팀 내 세미나 진행" - 성장과 기여. 이 정도면 괜찮다. 주니어는 성장 곡선 보여주면 된다.인사팀과의 전쟁 금요일 오후 3시. 인사팀 미팅. 우리 팀 8명 평가 결과 공유. S등급 1명 신청했다. 수진이. "연 2억 4천만원 손실 방지, 크리티컬 이슈 사전 발견율 92%" 인사팀 차장이 물었다. "다른 팀도 S등급 신청 많은데요. QA는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참았다. 화내면 안 된다. "QA가 하는 일 맞습니다. 근데 수진씨는 남들이 못 찾는 걸 찾아요. 결제 로직 버그는 개발팀 3명이 놓쳤고, 1차 QA에서도 안 나왔어요. 2차 심화 테스트에서 수진씨가 찾았습니다. 이게 시니어 역량입니다." "근데 2억이라는 숫자가 추정 아닌가요?" "맞습니다. 추정입니다. 근데 개발팀이 '신규 기능으로 매출 10% 증가 예상'이라고 쓸 때는 안 물어보시잖아요?" 차장이 웃었다. "알겠습니다. 검토하겠습니다." 검토한다는 건 50% 확률이다.A등급은 4명 신청했다. 자동화 기여한 혜진, 성능 테스트 전문성 키운 민수, 보안 테스트 강화한 지현, API 테스트 체계 만든 동욱. "A등급 4명은 많지 않나요? 다른 팀은 보통 2명인데." "우리 팀이 8명이고 다른 팀은 15명입니다. 비율로 치면 비슷합니다." 이것도 준비했다. 팀별 A등급 비율 표. 우리가 특별히 많지 않다. 인사팀이 고개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진행하겠습니다." 회의 끝났다. 복도 나오면서 한숨 쉬었다. 팀원들에게 말 못 하는 것 월요일 아침. 팀원들이 물었다. "팀장님, 평가 어떻게 됐어요?" "아직 최종 결과 안 나왔어." 거짓말은 아니다. 인사위원회 승인 남았다. 근데 내가 신청한 대로 안 될 수도 있다. 수진이가 S 못 받으면 내 책임이다. 내가 어필을 못한 거다. 수진이 잘못이 아니다. A등급 4명 중에 누가 빠지면? 그것도 내 책임이다. "팀장님이 날 못 지켜줬구나" 이렇게 생각한다.작년에 경험했다. 내가 A로 신청한 팀원이 B로 강등됐다. 이유는 "타 팀과 형평성". 팀원한테 말해줬다. "미안해. 내가 더 잘 어필할 걸." 그 팀원이 말했다. "괜찮아요. 팀장님 잘못 아니에요." 근데 3개월 뒤에 이직했다. 그게 관리자 책임이다. 성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과를 보이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싸움은 계속된다 수요일 오후. 인사팀에서 메일 왔다. "S등급 1명, A등급 3명 확정. A등급 1명은 B로 조정." 예상했다. 동욱이가 B가 됐다. 동욱이 잘못이 아니다. API 테스트 체계 진짜 잘 만들었다. 근데 다른 팀 시니어들이 더 강력한 성과를 냈다고 한다. 동욱이 불렀다. "동욱아, 평가 결과 나왔어." "B죠?" "어떻게 알았어?" "느낌이요. 괜찮아요." 괜찮을 리 없다. 동욱이 표정 봤다. "미안해. 내가 더 잘 싸울걸." "아니에요. 팀장님 덕분에 B라도 받았어요." "내년엔 꼭 A 받자. 지금부터 준비하자." 동욱이가 고개 끄덕였다. 근데 눈빛은 실망이었다.저녁에 혼자 생각했다. QA 성과 어필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개발은 "만들었다"로 끝난다. QA는 "안 터졌다"를 증명해야 한다. 안 일어난 일을 어떻게 증명하냐고. 그래서 매번 이렇게 싸운다. "우리가 없었으면 이런 일이 났을 겁니다" 가정법으로. "우리가 있어서 이 정도로 줄었습니다" 비교법으로. 피곤하다. 근데 안 싸우면 팀원들이 손해본다. 내년 준비는 지금부터 목요일 아침. 팀 회의 소집했다. "올해 평가 끝났다. 내년 준비 시작한다." 팀원들 당황했다. "벌써요?" "응. 벌써." 화이트보드에 썼다. "성과 어필을 위한 3가지 원칙"정량화 - 모든 업무에 숫자 붙이기 영향도 - 비즈니스 임팩트 연결하기 기록 - 매월 성과 로그 남기기"앞으로 매월 말에 각자 성과 정리한다. 간단하게." "그걸 1년 모으면 평가 자료 된다." "내년 11월에 허겁지겁 만들지 말자."구체적으로 정했다.장애 건수: 매월 집계, 전월 대비 비교 크리티컬 버그 발견: 비즈니스 영향도 금액으로 환산 테스트 효율: 공수 단축, 자동화 커버리지 협업 기여: 타팀 도움 준 것도 기록 개인 성장: 학습, 세미나, 멘토링 모두 기록혜진이가 물었다. "이거 매달 하면 귀찮은데요." "귀찮아. 근데 11월에 더 귀찮아." "그리고 이거 안 하면 너희 성과가 안 보여. 손해는 너희가 본다." 팀원들 고개 끄덕였다. 다들 올해 고생한 거 안다. 관리자로 산다는 것 금요일 저녁 7시. 퇴근 준비하는데 수진이가 왔다. "팀장님, 커피 한 잔 해요." 카페 갔다. "S등급 감사해요." "네가 잘했어." "아니에요. 팀장님이 잘 써주셨어요. 저는 그냥 일했을 뿐인데." 뭐라고 말해야 할까. "수진아, 너 정말 잘해. 근데 회사는 그걸 모를 수도 있어. 내가 말해줘야 알아." "저도 이제 시니어인데, 이런 거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제 성과 스스로 어필하는 것." "맞아. 그것도 역량이야." 수진이가 웃었다. "내년엔 제가 직접 해볼게요." "좋아. 근데 내가 검토는 해줄게."집에 왔다. 남편이 물었다. "평가 끝났어?" "응. 끝났어." "어땠어?" "싸웠어. 이겼어. 좀." 남편이 웃었다. "수고했어." 딸이 안방에서 나왔다. "엄마, 나도 오늘 시험 봤어. 100점!" "진짜? 잘했다!" "선생님이 칭찬해줬어." 부럽다. 초등학생은 100점 받으면 바로 칭찬받는다. QA는 100점 받아도 "원래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이런다. 근데 뭐 어쩌겠나. 이게 내 일이다. 13년차의 깨달음 밤 11시. 혼자 앉아서 생각했다. 13년 전 주니어 QA 시절엔 몰랐다. 테스트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버그만 열심히 찾으면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버그 찾는 건 기본이다. 그 버그가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게 진짜 일이다.팀장 되고 나서 더 배웠다. 내 성과 어필하는 것도 어렵다. 근데 팀원 성과 어필하는 건 더 어렵다. 왜냐면 내 일은 내가 다 알지만, 팀원 일은 내가 다 모른다. 그래서 물어봐야 하고, 파악해야 하고, 정리해야 한다. 안 하면? 팀원들이 묻힌다. 열심히 일했는데 평가 못 받는다. 그러면 떠난다.작년에 떠난 팀원 생각났다. 진짜 잘하는 애였다. 근데 내가 성과 어필 못 해줬다. B 받고 실망했다. 3개월 뒤 이직했다. 그게 제일 후회된다. 내가 조금만 더 싸웠으면. 숫자를 더 구체적으로 만들었으면. 인사팀을 더 설득했으면. 관리자는 팀원 지켜주는 사람이다. 성과로 지켜주는 거다. 내년을 위한 준비 주말에 노트 꺼냈다. 내년 계획 썼다. 월별 성과 리뷰 체크리스트장애 건수 및 심각도 크리티컬 버그 발견 및 영향도 테스트 효율 지표 팀원별 주요 기여 타팀 협업 사례분기별 팀원 1on1 필수 질문이번 분기 제일 뿌듯했던 일? 그게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 줬어? 성장한 부분은? 다음 분기 목표는?10월에 할 일 (평가 한 달 전)팀원별 성과 초안 작성 정량 지표 최종 검증 타팀 리드들과 크로스체크 인사팀 사전 커뮤니케이션이번엔 준비됐다. 내년 11월엔 허겁지겁 안 한다. 팀원들 성과 제대로 보여준다.남편이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해?" "응. 해야 해." "왜?" 생각했다.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해. 개발팀은 개발팀 리드가 챙기고, 디자인팀은 디자인 리드가 챙겨. QA는? 나 밖에 없어." "그래도 팀원들이 알아서 하면 안 돼?" "주니어들은 방법 모르고, 시니어들은 어필 안 익숙해. 결국 내가 해줘야 해." "힘들겠다." "힘들어. 근데 이게 내 일이야." 팀장의 성과는 팀원의 성과다 일요일 저녁. 슬랙에 메시지 왔다. 동욱이었다. "팀장님, 내년엔 꼭 A 받고 싶어요. 뭘 준비하면 될까요?" 답장 썼다. "일단 지금 하는 일 계속 잘해. API 테스트 체계 더 고도화하고. 그리고 매달 성과 정리해서 나한테 공유해. 내가 검토해줄게. 같이 준비하자." "감사합니다!" 채팅창 닫았다. 동욱이 내년엔 A 받는다. 내가 만든다.수진이도 메시지 보냈다. "팀장님, 저 내년에 후배들 멘토링 하고 싶어요. 그것도 성과가 될까요?" "당연하지. 팀 전체 역량 올리는 거잖아. 멘토링 계획 세우고, 과정 기록하고, 결과 측정하면 좋은 성과야." "알겠습니다! 계획 세워볼게요." 좋다.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다. 보이지 않는 일을 보이게 만드는 법 결국 이거다. QA는 보이지 않는다. 버그 안 터지는 게 우리 성과인데, 안 터진 걸 어떻게 보여주냐. 그래서 만든다. 숫자로 만들고, 이야기로 만들고, 데이터로 만든다. "저희가 올해 장애 35% 줄였습니다" - 숫자 "결제 이중과금 버그 발견해서 연 2억 손실 방지했습니다" - 이야기 "크리티컬 버그 사전 발견율 87%, 업계 평균 65% 대비 높습니다" - 데이터 이 세 가지 있으면 설득된다. 없으면 안 된다.그리고 중요한 거. 팀원들이 스스로 어필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매번 다 해줄 순 없다. 시니어들은 성과 정리 방법 가르친다. 주니어들은 성장 스토리 만들게 돕는다. 중간급들은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피드백 준다. 3년 뒤엔 내가 안 챙겨도 팀원들이 알아서 한다. 그게 목표다. 또 다른 시즌이 온다 11월 끝나간다. 평가 시즌 끝났다. 수진이 S, 세 명 A, 네 명 B. 작년보단 나았다. 근데 끝이 아니다. 12월 되면 내년 목표 세운다. 1월 되면 새 프로젝트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11월 온다. 매년 반복이다. 팀원 성과 만들고, 정리하고, 싸우고. 이게 팀장 일이다.피곤하냐고? 피곤하다. 그만두고 싶냐고? 가끔. 근데 왜 하냐고? 누가 해야 하니까. 내가 안 하면 우리 팀원들 손해보니까. 그리고 솔직히. 팀원들 좋은 평가 받을 때. "팀장님 덕분이에요" 이 말 들을 때. 조금 뿌듯하다. 이것 때문에 한다. 내년에도 할 거다.QA 성과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거다. 싸워야 보인다.
- 03 Dec, 2025
팀원 1on1에서 '저 퇴사하고 싶어요'라고 들었을 때
목요일 오후 3시 1on1 시간이었다. 민지. 입사 3년차. 우리 팀에서 제일 꼼꼼한 애다. "팀장님, 저 퇴사하고 싶어요." 커피 마시다 말았다.준비한 건 아니었을 거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개발자로 전환하고 싶어요. QA는... 미래가 안 보여요." 3년 전 생각났다. 아니, 10년 전. 나도 똑같은 말 했었지. 예상했어야 했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최근 2주. 민지가 이상했다.회의 때 의견 안 냄 리뷰 요청해도 "네" 하고 끝 점심 같이 안 먹음 눈 마주치면 피함그냥 바쁜가 했다. 아니었다. "언제부터 생각했어?" "한... 6개월?" 6개월. 반년을 혼자 끙끙댔다는 거다. 팀장인 내가 몰랐다."이유를 들어도 될까?" 민지가 핸드폰 꺼냈다. 메모앱. 정리해온 거다. 진심이었다. 민지의 이유들 하나씩 읽어줬다. "QA는 개발보다 연봉이 낮아요." 맞다. 우리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버그 찾으면 칭찬보다 '왜 이제 찾았냐'는 말을 더 많이 들어요." 이것도 맞다. "자동화 공부해도 개발팀이 '그건 우리가 할게요'라고 해요." 이것도 맞다. 지난주에 그랬다. "친구들이 개발자로 이직해서 연봉 2천 오른 얘기 들으면..." 말끝을 흐렸다. 다 맞는 말이었다. 하나도 반박 못 하겠더라. "그래서 개발자 준비 중이에요. 인프런 강의 듣고 토이 프로젝트 하고..." 밤에 코딩 공부한다고 했던 게 이거였구나. "팀장님한테 미안해서 말 못 했어요. 근데 오늘은... 거짓말하기 싫어서요." 민지 눈이 빨개졌다. 나도 코끝이 찡했다. 13년 차가 할 수 있는 말 "민지야." 뭐라고 해야 할까. 'QA도 좋은 직업이야' 같은 헛소리는 하기 싫었다. '연봉은 올라갈 거야' 같은 거짓말도 하기 싫었다.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QA는... 한계가 있다고." "응. 맞아." 민지가 놀란 표정이었다. "나도 10년 전에 개발자 전환 고민했어. 진짜로." "...정말요?" "응. 자바 공부도 했어. 토이 프로젝트도 만들었고." "그럼 왜 안 하셨어요?"한참 생각했다. "QA가 좋아서는 아니었어."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10년 하다 보니까 여기가 내 자리더라. 이상하게." QA라는 자리 "민지야. 솔직히 말할게." "네." "QA는 인정받기 어려운 직업이야. 맞아." 민지가 고개 끄덕였다. "연봉도 개발자보다 적어. 이것도 맞아." "근데 팀장님은..." "근데 나는 계속했어. 왜냐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없으면 진짜 큰일 나거든. 진심으로." 지난달 생각났다. 배포 전날. 민지가 시나리오 테스트하다가 결제 버그 찾았다. "결제 금액이 100배로 나가는 버그. 그거 민지가 찾았잖아." "...네." "그거 배포됐으면?" 민지가 입술 깨물었다. "CS 폭주하고, 환불 처리하고, 신뢰도 떨어지고. 최소 3억 손해." "근데 개발팀은 '고마워'보다 '휴 다행이야'라고만 했잖아요." "응. 맞아." 이게 QA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했을 뿐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근데 못 찾으면 욕먹는다. "근데 민지야. 그게 우리 일이야." "......" "불합리하지. 나도 안다." 퇴사를 말리고 싶지 않았다 "민지야. 솔직히 말할게." "네." "나는 너 붙잡고 싶어. 진심으로." 민지가 나를 봤다. "너 지금 우리 팀에서 제일 잘해. QA 감각도 좋고, 리스크 판단도 빠르고." "근데요?" "근데 개발자 되고 싶으면 해." "...네?" "13년 차가 3년 차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거야." 민지 표정이 복잡했다. "QA는 마음에 들어서 하는 직업이 아니야. 적어도 나한테는." "그럼 왜 하세요?" "적성이 맞아서." 이상한 말 같지만 진짜다. "나는 버그 찾는 게 재밌어. 시나리오 짜는 것도 재밌고. 리스크 생각하는 것도." "저도 그런데요." "그래?" "네. 근데... 그게 커리어가 될까요?" 할 말이 없었다. 정답을 모르겠더라. 13년을 돌아보면 "민지야. 내가 13년 했잖아." "네." "10년 전에는 QA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았어." "...그랬어요?" "응. 테스터라고 불렀고, 수동 테스트만 했고, 경력 인정도 안 됐어." "지금은요?" "조금 나아졌어. 진짜로." QA 직무가 생긴 것만 해도 발전이다. 자동화 테스트 요구하는 것도. 성과 평가에 품질 지표가 들어간 것도. "5년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어. QA 컨퍼런스도 생기고, 커뮤니티도 커지고." "근데 여전히 개발자보다는..." "응. 맞아." 이건 부정 못 한다. "그래도 나는 믿어.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정말요?" "응. AI 시대에 품질은 더 중요해질 거야. 자동화도 더 발전할 거고." "그럼 저도 계속해야 할까요?" 대답 못 했다. 그건 내가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멘토의 한계 1on1 끝나고 혼자 남았다. 민지는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하고 나갔다.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설득했나? 아니다. 위로했나? 그것도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창밖을 봤다. 저 밖에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있다. 민지보다 적게 버는 개발자도 있고, 더 힘들게 사는 개발자도 있다. 근데 '개발자'라는 타이틀은 'QA'보다 낫다. 이게 현실이다. 슬랙에 민지 프로필 들어갔다. "3년차 QA Engineer. 꼼꼼함이 장점. 완벽주의자." 민지가 직접 쓴 소개다. 만약 민지가 떠나면. 팀은 돌아가겠지. 다른 사람 뽑으면 되고. 근데 민지 같은 사람 또 오기 어렵다. QA 감각. 이건 배워지는 게 아니거든. 팀장의 책임 저녁 7시. 남편한테 전화했다. "오늘 후배가 퇴사하고 싶대." "아 그래? 왜?" "QA가 미래 없다고." "...뭐라고 했어?" "사실을 말했지. 맞다고." 남편이 웃었다. "너답네." "근데 나 잘한 거 맞아?" "몰라. 근데 거짓말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긴 하다. 'QA도 좋은 직업이야' 같은 말 했으면. 민지는 더 혼란스러웠을 거다. "만약 민지가 진짜 퇴사하면?"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책임 같은데." "왜?" "내가 QA를 매력적으로 만들지 못했으니까." 남편이 한숨 쉬었다. "여보. 그건 당신 책임이 아니야." "근데..." "QA 생태계 문제지. 당신이 어떻게 해." 맞는 말이다. 근데 위로는 안 된다. QA를 계속하는 이유 집에 와서 샤워했다. 거울 보니까 피곤한 얼굴. 38살. 13년 차. 왜 나는 QA를 계속하나. 개발자 전환할 수 있었다. 10년 전에. 연봉도 더 받을 수 있었다. 근데 안 했다. 왜? 답은 간단하다. 이게 내 자리니까. QA는 품질 지키는 사람이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리스크 찾는 사람. 배포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사람. 장애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사람. 누가 해야 한다. 그게 나다. 13년 동안 느낀 거. QA는 소명이 아니다.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잘한다. 이상하게. 금요일 아침 출근했다. 민지가 자리에 있었다. "팀장님." "응." "어제 얘기 감사했어요." "...응." "집에 가서 생각 많이 했어요." "그래?" "일단은 더 해볼게요. QA." 가슴이 뛰었다. "근데 조건이 있어요." "뭔데?" "팀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13년 차."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민지야. 나는 롤모델이 아니야." "알아요. 근데 팀장님은 거짓말 안 하잖아요." "......" "그게 좋았어요. 어제." 민지가 웃었다. "QA 힘들다고, 맞다고 해줘서. 근데 계속한다고 해서." "그래?" "네. 그럼 저도 해볼게요."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 "네. 알아요." 민지가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커피 마시러 갔다. 손이 떨렸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잘한 건지. 민지가 옳은 선택을 한 건지. 근데 확실한 건. 거짓말은 안 했다. 오후 회의 개발팀 리드 미팅. "이번 스프린트 일정 좀 빡빡한데요?" 개발 리드가 말했다. "테스트 기간 이틀만 줄여주시면..." 예전 같았으면 협상했을 거다. 근데 오늘은. "안 됩니다." "네? 왜요?" "품질은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틀 줄이면 시나리오 테스트 못 합니다. 장애 나면 책임 누가 집니까?" 개발 리드가 입술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괜찮습니다. 일정은 함께 조율하죠." 회의 끝나고 민지가 말했다. "팀장님. 멋있었어요." "...그래?" "네. 저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 13년 차 되면." "아니요. 지금도 할 수 있어요." "...그래?" "네. 팀장님 보고 배웠어요." 민지가 웃었다. QA는 이런 직업이다. 누군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일. 쉽지 않다. 외롭다.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게 우리다.팀원 퇴사 고민은 팀장 고민이기도 하다. QA 생태계 문제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근데 오늘 하루는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