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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 1on1에서 '저 퇴사하고 싶어요'라고 들었을 때

팀원 1on1에서 '저 퇴사하고 싶어요'라고 들었을 때

목요일 오후 3시 1on1 시간이었다. 민지. 입사 3년차. 우리 팀에서 제일 꼼꼼한 애다. "팀장님, 저 퇴사하고 싶어요." 커피 마시다 말았다.준비한 건 아니었을 거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개발자로 전환하고 싶어요. QA는... 미래가 안 보여요." 3년 전 생각났다. 아니, 10년 전. 나도 똑같은 말 했었지. 예상했어야 했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최근 2주. 민지가 이상했다.회의 때 의견 안 냄 리뷰 요청해도 "네" 하고 끝 점심 같이 안 먹음 눈 마주치면 피함그냥 바쁜가 했다. 아니었다. "언제부터 생각했어?" "한... 6개월?" 6개월. 반년을 혼자 끙끙댔다는 거다. 팀장인 내가 몰랐다."이유를 들어도 될까?" 민지가 핸드폰 꺼냈다. 메모앱. 정리해온 거다. 진심이었다. 민지의 이유들 하나씩 읽어줬다. "QA는 개발보다 연봉이 낮아요." 맞다. 우리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버그 찾으면 칭찬보다 '왜 이제 찾았냐'는 말을 더 많이 들어요." 이것도 맞다. "자동화 공부해도 개발팀이 '그건 우리가 할게요'라고 해요." 이것도 맞다. 지난주에 그랬다. "친구들이 개발자로 이직해서 연봉 2천 오른 얘기 들으면..." 말끝을 흐렸다. 다 맞는 말이었다. 하나도 반박 못 하겠더라. "그래서 개발자 준비 중이에요. 인프런 강의 듣고 토이 프로젝트 하고..." 밤에 코딩 공부한다고 했던 게 이거였구나. "팀장님한테 미안해서 말 못 했어요. 근데 오늘은... 거짓말하기 싫어서요." 민지 눈이 빨개졌다. 나도 코끝이 찡했다. 13년 차가 할 수 있는 말 "민지야." 뭐라고 해야 할까. 'QA도 좋은 직업이야' 같은 헛소리는 하기 싫었다. '연봉은 올라갈 거야' 같은 거짓말도 하기 싫었다. "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QA는... 한계가 있다고." "응. 맞아." 민지가 놀란 표정이었다. "나도 10년 전에 개발자 전환 고민했어. 진짜로." "...정말요?" "응. 자바 공부도 했어. 토이 프로젝트도 만들었고." "그럼 왜 안 하셨어요?"한참 생각했다. "QA가 좋아서는 아니었어."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10년 하다 보니까 여기가 내 자리더라. 이상하게." QA라는 자리 "민지야. 솔직히 말할게." "네." "QA는 인정받기 어려운 직업이야. 맞아." 민지가 고개 끄덕였다. "연봉도 개발자보다 적어. 이것도 맞아." "근데 팀장님은..." "근데 나는 계속했어. 왜냐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리가 없으면 진짜 큰일 나거든. 진심으로." 지난달 생각났다. 배포 전날. 민지가 시나리오 테스트하다가 결제 버그 찾았다. "결제 금액이 100배로 나가는 버그. 그거 민지가 찾았잖아." "...네." "그거 배포됐으면?" 민지가 입술 깨물었다. "CS 폭주하고, 환불 처리하고, 신뢰도 떨어지고. 최소 3억 손해." "근데 개발팀은 '고마워'보다 '휴 다행이야'라고만 했잖아요." "응. 맞아." 이게 QA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했을 뿐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근데 못 찾으면 욕먹는다. "근데 민지야. 그게 우리 일이야." "......" "불합리하지. 나도 안다." 퇴사를 말리고 싶지 않았다 "민지야. 솔직히 말할게." "네." "나는 너 붙잡고 싶어. 진심으로." 민지가 나를 봤다. "너 지금 우리 팀에서 제일 잘해. QA 감각도 좋고, 리스크 판단도 빠르고." "근데요?" "근데 개발자 되고 싶으면 해." "...네?" "13년 차가 3년 차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거야." 민지 표정이 복잡했다. "QA는 마음에 들어서 하는 직업이 아니야. 적어도 나한테는." "그럼 왜 하세요?" "적성이 맞아서." 이상한 말 같지만 진짜다. "나는 버그 찾는 게 재밌어. 시나리오 짜는 것도 재밌고. 리스크 생각하는 것도." "저도 그런데요." "그래?" "네. 근데... 그게 커리어가 될까요?" 할 말이 없었다. 정답을 모르겠더라. 13년을 돌아보면 "민지야. 내가 13년 했잖아." "네." "10년 전에는 QA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았어." "...그랬어요?" "응. 테스터라고 불렀고, 수동 테스트만 했고, 경력 인정도 안 됐어." "지금은요?" "조금 나아졌어. 진짜로." QA 직무가 생긴 것만 해도 발전이다. 자동화 테스트 요구하는 것도. 성과 평가에 품질 지표가 들어간 것도. "5년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어. QA 컨퍼런스도 생기고, 커뮤니티도 커지고." "근데 여전히 개발자보다는..." "응. 맞아." 이건 부정 못 한다. "그래도 나는 믿어.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정말요?" "응. AI 시대에 품질은 더 중요해질 거야. 자동화도 더 발전할 거고." "그럼 저도 계속해야 할까요?" 대답 못 했다. 그건 내가 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멘토의 한계 1on1 끝나고 혼자 남았다. 민지는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하고 나갔다.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설득했나? 아니다. 위로했나? 그것도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다. 창밖을 봤다. 저 밖에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있다. 민지보다 적게 버는 개발자도 있고, 더 힘들게 사는 개발자도 있다. 근데 '개발자'라는 타이틀은 'QA'보다 낫다. 이게 현실이다. 슬랙에 민지 프로필 들어갔다. "3년차 QA Engineer. 꼼꼼함이 장점. 완벽주의자." 민지가 직접 쓴 소개다. 만약 민지가 떠나면. 팀은 돌아가겠지. 다른 사람 뽑으면 되고. 근데 민지 같은 사람 또 오기 어렵다. QA 감각. 이건 배워지는 게 아니거든. 팀장의 책임 저녁 7시. 남편한테 전화했다. "오늘 후배가 퇴사하고 싶대." "아 그래? 왜?" "QA가 미래 없다고." "...뭐라고 했어?" "사실을 말했지. 맞다고." 남편이 웃었다. "너답네." "근데 나 잘한 거 맞아?" "몰라. 근데 거짓말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렇긴 하다. 'QA도 좋은 직업이야' 같은 말 했으면. 민지는 더 혼란스러웠을 거다. "만약 민지가 진짜 퇴사하면?" "그럼 어쩔 수 없지." "내 책임 같은데." "왜?" "내가 QA를 매력적으로 만들지 못했으니까." 남편이 한숨 쉬었다. "여보. 그건 당신 책임이 아니야." "근데..." "QA 생태계 문제지. 당신이 어떻게 해." 맞는 말이다. 근데 위로는 안 된다. QA를 계속하는 이유 집에 와서 샤워했다. 거울 보니까 피곤한 얼굴. 38살. 13년 차. 왜 나는 QA를 계속하나. 개발자 전환할 수 있었다. 10년 전에. 연봉도 더 받을 수 있었다. 근데 안 했다. 왜? 답은 간단하다. 이게 내 자리니까. QA는 품질 지키는 사람이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리스크 찾는 사람. 배포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사람. 장애 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사람. 누가 해야 한다. 그게 나다. 13년 동안 느낀 거. QA는 소명이 아니다.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잘한다. 이상하게. 금요일 아침 출근했다. 민지가 자리에 있었다. "팀장님." "응." "어제 얘기 감사했어요." "...응." "집에 가서 생각 많이 했어요." "그래?" "일단은 더 해볼게요. QA." 가슴이 뛰었다. "근데 조건이 있어요." "뭔데?" "팀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13년 차."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민지야. 나는 롤모델이 아니야." "알아요. 근데 팀장님은 거짓말 안 하잖아요." "......" "그게 좋았어요. 어제." 민지가 웃었다. "QA 힘들다고, 맞다고 해줘서. 근데 계속한다고 해서." "그래?" "네. 그럼 저도 해볼게요."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 "네. 알아요." 민지가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커피 마시러 갔다. 손이 떨렸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잘한 건지. 민지가 옳은 선택을 한 건지. 근데 확실한 건. 거짓말은 안 했다. 오후 회의 개발팀 리드 미팅. "이번 스프린트 일정 좀 빡빡한데요?" 개발 리드가 말했다. "테스트 기간 이틀만 줄여주시면..." 예전 같았으면 협상했을 거다. 근데 오늘은. "안 됩니다." "네? 왜요?" "품질은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틀 줄이면 시나리오 테스트 못 합니다. 장애 나면 책임 누가 집니까?" 개발 리드가 입술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괜찮습니다. 일정은 함께 조율하죠." 회의 끝나고 민지가 말했다. "팀장님. 멋있었어요." "...그래?" "네. 저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 13년 차 되면." "아니요. 지금도 할 수 있어요." "...그래?" "네. 팀장님 보고 배웠어요." 민지가 웃었다. QA는 이런 직업이다. 누군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일. 쉽지 않다. 외롭다.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게 우리다.팀원 퇴사 고민은 팀장 고민이기도 하다. QA 생태계 문제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근데 오늘 하루는 버텼다.